· Team Arte · legendary-musicians  · 5 min read

파블로 카잘스: 첼로를 독주 악기로 만든 거장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을 재발견하고 첼로의 위상을 바꾼 파블로 카잘스의 위대한 음악 인생을 돌아봅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을 재발견하고 첼로의 위상을 바꾼 파블로 카잘스의 위대한 음악 인생을 돌아봅니다.

첼로의 해방자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는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의 엘 벤드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악기를 접했지만, 열한 살에 첼로를 만나면서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마드리드 왕립음악원과 브뤼셀 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20세기 초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쳤습니다.

카잘스 이전의 첼로는 오케스트라의 반주 악기, 혹은 바이올린에 비해 부차적인 독주 악기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카잘스는 혁신적인 보잉 테크닉과 왼손 기법을 개발하여 첼로의 표현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넓혔고, 첼로를 당당한 독주 악기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의 재발견

카잘스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의 재발견입니다. 열세 살이던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헌책방에서 이 작품의 악보를 우연히 발견한 카잘스는 12년간 연구한 끝에 비로소 공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 작품은 단순한 연습곡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카잘스의 연주를 통해 첼로 문헌 중 가장 심오한 걸작으로 재평가되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첼리스트가 이 곡을 필수 레퍼토리로 여기는 것은 전적으로 카잘스 덕분입니다.

음악가이자 평화주의자

카잘스는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1939년 프랑스로 망명한 후,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국가에서는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공개 연주 활동은 크게 제한되었지만, 예술가로서의 신념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부터 프랑스 프라드에서 시작한 프라드 음악 페스티벌은 카잘스의 예술적·인도적 이상을 실현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만년에는 푸에르토리코에 정착하여 카잘스 페스티벌을 창설했고, 유엔 총회에서 카탈로니아 민요 ‘새의 노래(El Cant dels Ocells)‘를 연주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추천 음반

  •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 (1936–1939 녹음) —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첼로 녹음 중 하나
  •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체코 필하모닉, 조지 셀 지휘, 1937) — 카잘스의 열정이 담긴 명연
  • 새의 노래(El Cant dels Ocells) — 카잘스의 앙코르 피스이자 평화의 상징

97세의 유산

카잘스는 1973년 푸에르토리코에서 아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그의 삶은 음악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음악은 저항의 외침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카잘스에게 첼로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세상에 말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오케스트라 드 아르떼에서 이 거장들의 음악을 함께 연주해보세요.

  • 첼로
  • 전설의 연주자
Share: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