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am Arte · legendary-musicians · 5 min read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브리튼과 함께한 로스트로포비치의 음악 인생과 베를린 장벽 앞에서의 역사적 연주를 돌아봅니다.

바쿠에서 온 천재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1927–2007)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첼리스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네 살에 첼로를 시작해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셈욘 코졸루포프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게 사사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이미 탁월한 기량을 보였으며, 1950년대에는 소련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국제 무대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동료 음악가들은 그를 친근하게 ‘슬라바(Slava)‘라고 불렀는데, 이는 러시아어로 ‘영광’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별명처럼,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로 역사에 가장 영광스러운 장을 써내려간 인물입니다.
작곡가들의 영감
로스트로포비치의 가장 놀라운 업적 중 하나는 동시대 작곡가들로부터 100곡이 넘는 작품을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첼로 협주곡 1번(1959)과 2번(1966)을, 프로코피예프는 교향적 협주곡(첼로 협주곡 2번의 개작)을 그를 위해 썼습니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과도 깊은 우정을 나누며 첼로 교향곡, 무반주 첼로 조곡 3곡 등을 헌정받았습니다.
이처럼 로스트로포비치는 단순히 기존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 첼로 레퍼토리 자체를 확장한 창조적 연주자였습니다.
자유를 향한 첼로
1970년, 로스트로포비치는 소련 당국의 탄압을 받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자신의 별장에 숨겨주며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해외 연주가 금지되고 소련 내 활동이 제한되었으며, 1974년 아내인 소프라노 갈리나 비시네프스카야와 함께 소련을 떠나 서방으로 망명했습니다. 1978년에는 소련 시민권이 박탈되었습니다.
1989년 11월 11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로를 들고 체크포인트 찰리로 달려가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했습니다. 이 장면은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휘자 로스트로포비치
첼리스트로서의 명성에 더해, 로스트로포비치는 1977년부터 1994년까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하며 지휘자로서도 상당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러시아 오페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규모 관현악 작품에서의 드라마틱한 해석이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추천 음반
-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지휘, 1968) — 스케일 큰 연주의 정점
-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오먼디 지휘, 1959) — 초연자의 결정적 녹음
-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 (1991) — 원숙한 시기의 깊은 명상
음악과 자유의 전사
2007년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난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리스트, 지휘자, 그리고 인권 옹호자로서 거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에게 음악은 예술인 동시에 인간 자유를 위한 가장 강력한 언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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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로
- 전설의 연주자




